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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본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책/그리스도의 말씀

[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영나미 2019. 4. 5. 08:07

[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하나님 자신을 대표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이 한 사역은 단지 사람의 일부분 깨달음과 성령의 일부분 깨우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깨달음에다 성령의 깨우침까지 더해 그런 말을 써낸 것인데, 그것은 신기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말 속에는 불가피하게 사람의 체험이 얼마간 섞여 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으로 형제자매들에게 공급하였고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돌보았다. 그가 쓴 편지는 생명 독경(讀經)에 속하지 않고, 인물 전기에 속하지 않으며, 메시지에 속하지도 않고, 더욱이 교회가 실행해야 할 진리나 교회 행정도 아니다. 부담이 있는 사람으로서, 성령의 보냄을 받아 사역하는 사람으로서는 반드시 이런 것을 해내야 한다. 만약 성령이 사람을 일으켜 사람에게 부담을 더해 주어도 사람이 교회 내의 사역을 담당하지 않고 교회 내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교회 내의 문제를 다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본분을 잘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사도가 사역을 하는 기간에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은 별로 신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본분 내의 사역이니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였다. 그가 편지를 쓴 목적은 생명 독경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영적 인물의 전기를 쓰기 위한 것도 아니며, 더욱이 성도들에게 따로 출로를 개척해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기능을 다하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하여 하나님께 잘 아뢰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사역을 하면서 그 자신에 대해 책임지고 형제자매들에 대해 책임지려면 그는 반드시 사역을 잘해야 하였고, 반드시 교회의 일을 마음에 두어야 하였다. 그런 것은 다 그의 본분 내의 사역이었다.






  너희는 바울의 서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면,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서신, 요한의 서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더 이상 그런 서신을 다 천서로 또한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더욱이 바울을 하나님으로 여겨 대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어쨌든 사람의 사역과 다른데, 하물며 하나님의 발표가 또 어떻게 사람의 표현과 같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특정된 성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그의 역사에서 발표되며,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체험에서 체현되고 또한 사람의 추구에서 표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표인지 아니면 사람의 표현인지는 사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 자신이 해석하거나 사람이 전력을 다해 증거할 필요가 없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그 어떤 사람을 억누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연스럽게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일이지, 강요할 일이 아니고 사람이 간섭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체험에서 알 수 있기에 사람이 별도로 체험 사역을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본분을 하는 동시에 사람의 실질을 다 유로하고, 하나님은 역사하는 동시에 고유한 성품을 다 발표해 낸다. 사람의 사역이라면 감출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라면 아무도 하나님의 성품을 감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면 하나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그 사람의 사역과 말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거나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면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사역을 사람의 사역이나 사람의 본분으로 정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의 발표와 바울의 서신을 동등히 대하거나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사람의 교훈의 말을 동등하게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인지 아니면 사람의 사역인지 하는 것은 모두 원칙적인 구별이 있는 것이고 실질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지, 사역 범위의 크기나 잠시적인 사역 효율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런 방면에서 원칙적인 착오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는 것은 겉면이고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는 것은 실질이고 사람의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보통 사람의 본분으로 여기고, 사람의 대규모적인 사역을 사람이 하는 본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사역으로 여긴다면, 원칙상의 착오를 범한 것이 아니냐? 


[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말씀]——너는 ‘13편 서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사람이 쓰는 편지와 전기는 자유로이 해낼 수 있지만 그것은 성령 역사의 기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발한 음성과 역사는 사람이 자유로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사유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사람이 탐구한 후에 밝히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희가 이런 원칙적인 일에 전혀 반응이 없다면 너희의 믿음은 매우 참되거나 매우 섬세한 것이 아니다. 너희의 믿음은 다만 막연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흐리멍덩하고 원칙이 없으며 최소한 하나님과 사람의 이 두 가지 실질적인 문제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믿음이 바로 가장 무감각한 믿음이 아니냐? 역대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쓰임받은 사람이 어찌 바울 하나뿐이겠느냐? 교회를 위해 사역한 사람이 또 어찌 바울 혼자뿐이겠느냐? 편지로 교회를 돌본 사람이 또 어찌 바울 한 사람뿐이겠느냐? 그 사람들의 사역은 규모와 영향력의 크기 또는 사역 효과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역한 원칙과 실질은 다 비슷한 것이 아니냐? 그 사람들의 사역은 다 하나님의 사역과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지 않으냐? 하나님 자신의 각 단계 사역은 비록 뚜렷하게 서로 다른 부분이 있고 또한 많은 역사 방식도 다 완전하게 같지는 않지만 그 실질과 근원은 다 하나가 아니냐?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런 일에 대해 여전히 밝히 알지 못한다면 사람의 ③*이지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 말을 다 보고도 여전히 바울의 서신을 신성불가침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영적 인물의 전기와도 같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지가 너무나 비정상이다. 그런 사람은 의심할 바 없이 사리 분별이 없는 이론(직역: 도리) 전문가이다. 설령 네가 바울을 숭배한다 할지라도 너는 바울과의 친밀한 감정으로 인해 사실의 진상을 어기거나 진리의 존재를 반박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내가 말한 것은 바울의 사역과 서신을 다 불살라 버리는 것이 아니고, 게다가 그 참고 가치를 완전히 부인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말하는 뜻은 너희에게 모든 일과 사람에 대해 다 정확한 인식과 합리적인 평가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이지이고, 이것이야말로 진리가 있고 정의가 있는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③ 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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