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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본문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보고 나서 대략적인 개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이것이 인류에게 부족한 점이다. 하나님이 어떤 시각으로 말씀하든 최종 목적은 사람이 ‘육신으로 거하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만약 성육신 하나님께 인간적인 것이 하나도 없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느낌만 가득하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부족함은 하나님 말씀에 어울리는 기초 재료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을 겨눠 말씀하게 된 배경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이래야 이론과 실제가 서로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래야 사람이 진지하게 자신을 잘 알아가게 할 수 있다. 만약 성육신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고 하나님도 그렇게 증거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반대로 행한다. 즉, 사람의 관념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은 매우 좋은 것이다. 이 순간 어찌 찬미하지 않겠느냐? 어떤 처지가 되거나 어느 날이 되면 너는 정말 베드로처럼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이 우러나는 기도를 할 수 있겠느냐? 만약 베드로처럼 사탄의 손아귀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탄의 사슬에서 해방되었고, 육을 이기고 사탄을 이겼다’는 진정한 뜻이다. 이는 더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
이야말로 ‘신성이 나서서 일을 하고,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 사람에게 역사하여’ 얻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영이 육신에서 나와’ 얻은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과거에는 실제를 중시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진짜 실제를 아는 것이냐?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가 높지 않지만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겸손’이 드러난다. 사람은 언제나 앞서 걸으며 나를 ‘안내’하기 좋아한다. 내가 ‘방향을 잃을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서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지하 감옥으로 들어갈까 봐 몹시 두려워 계속 나를 ‘끌고’ 앞으로 가고 있다.” 이 간단한 말씀에 대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에서 진실로 하나님 말씀의 근원을 알겠느냐? 하나님이 너희의 어떤 관념에 대해 이런 말씀을 했는지 깊게 생각해 보았느냐? 날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느냐? 다음 단락 첫마디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내 뜻을 모른 채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간구한다. 마치 내가 사람에게 주는 풍성함이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는 듯, 일종의 공급 부족 상황인 것 같다.” 이 말씀에서 너희 내면에 있는 관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과거에 했던 일을 기억하지도, 추궁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과거의 일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남은 여정에서 ‘마지막 시대의 베드로 정신’을 길러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해낼 자신이 있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저 ‘베드로를 본받고’ 최종적으로 큰 붉은 용에게 수치를 주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단지 사람이 나와 협력할 의지를 갖길 바란다. 나는 사람이 나를 위해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거나 머리 둘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씀했다. 세상에는 90년대(역주: 1990년대)의 레이펑 정신을 기르지만,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은 너희에게 ‘독특한 베드로 풍격’을 창조하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정말로 노력해 이룰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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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를 거닐며 산책할 때 나는 우주의 모든 사람을 둘러보았다. 땅에 사람들이 빽빽이 있지만 그 가운데 내 일을 하기에 적합한 자는 한 명도 없었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 또한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때 나는 슬피 탄식했다. 순간 사람은 흩어졌고, 내가 그들을 ‘한꺼번에 쓸어 버리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 다시는 모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상당히 난해하게 여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큰 요구를 하시지 않는다면서 왜 자신의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없다며 슬피 탄식하시냐고 말이다. 이것은 모순이냐? 글자 그대로 보면 모순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모순이 아니다. 아마 너는 “내가 한 말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자신의 사역을 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며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지켜보았다. 하나님이 영계에서 사탄을 대상으로 자신의 새로운 사역을 할 때,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으로 인해 각종 관념이 생겨 땅에서 ‘하나님이 슬피 탄식할 때’,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에 대해 모두 말했을 때 사람은 극력 저항했다. 심지어 어떤 자는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관념을 가지는 자는 모두 그의 원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사람이 어찌 ‘흩어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 특히 오늘날 형벌이 임했을 때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을까 더 두려워하며, 그들을 형벌한 후 ‘한꺼번에 쓸어 버릴 것’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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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의 다음 말씀과 같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내 형벌에서 나오지 못하게 ‘묶어’ 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 경영 속에 사람의 역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역을 순조롭게 완성할 수 없고, 내 사역이 잘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사지로 몰고 자신의 사역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는 과정을 통해 또 사람을 형벌한다. 그런 다음 사람을 통해 자신의 행사를 나타낸다. 사람은 계속 하나님 말씀의 어조에 형벌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의식적으로 진입하지 않았고, 그 의지를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 앞에서 뭐라 말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일찍이 내 집으로 사람을 초대했지만 나의 부름에 사람이 모두 사방으로 ‘달아나니’ 마치 대접받으러 오라는 것이 아니라 형장에 오르라고 한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집은 텅 비어 버렸다. 사람은 줄곧 나를 회피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일부 사역을 행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라고 말씀했다. 사람의 사역의 실수에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요구를 선명히 내세웠다. 그리고 이 일을 사람이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씀을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사람에게 행한 또 다른 사역’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급한 ‘한꺼번에 쓸어 버린다’는 말씀은 일단 거론하지 않겠다. 이것은 오늘날의 사역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에 사람을 책망하는 말씀도 적잖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방식이 너무 많아서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100% 확신하지 못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 중 사역에 필요한 부분은 많지만 사실은 적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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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만 많아지게 되었다. 사람은 관념으로 하나님이 너무 지혜로워 사람이 아예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치 아무것도 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아예 입을 대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은 내 음성에 항상 양념을 더하려 한다”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추상화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의 구상은 하나님도 거의 ‘닿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라는 제약 요소로 인해 말씀 중 일부분에 ‘직설적인’ 표현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요구가 ‘너무 높기’ 때문에, 게다가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 흡사 영계를 꿰뚫고 사탄의 소행을 볼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줄어들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많아질수록 사람의 얼굴에 깃든 수심이 더 짙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단순하게 순종하지 못하고 결말을 생각하는 것이냐? 그렇게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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