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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본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책/그리스도의 말씀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영나미 2019. 4. 6. 17:10

[]——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마치 하나님이 사람을 피해서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하고, 하나님은 전혀 사람의 행위를 다시 상대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사람의 분량이 어떠한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한, 사람의 관념을 겨누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의 뜻에 따라 사람을 피해서 말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갖가지 이유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명확히 알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상할 것은 없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 본래 목적은 사람에게 말씀 속에서 어떤 요령이나 비결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 온 사역 방식 중의 하나이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 말씀 속에서 비밀에 관한 것이나 베드로, 바울, 욥에 관한 일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이 마땅히 해내야 하며,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분량을 고려하면 이는 이미 최절정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한 효과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닌데 왜 그리 많은 말씀을 했겠느냐? 이는 하나님이 말씀한 형벌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런 일들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공격으로 사람은 고통을 더 받았다. 겉으로 보면 모든 사람은 책망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게 되었으며 ‘봉사자’는 백성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보기에 이런 상황들은 마치 누리는 단계에 진입한 것 같다. 사실, 모든 사람은 실제 사정에 따라 연단 속에서 더 무거운 형벌로 들어갔다. 하나님이 말씀한 “내 사역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차츰차츰 높아진다.”라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봉사자’를 무저갱에서 끌어올려 더 무거운 형벌인 유황불 못으로 던져 넣었다. 그래서 사람이 받는 고통이 더 커졌다고 한 것이다. 거의 빠져나올 수가 없는데, 이것이 더 무거운 형벌이 아니겠느냐? 더 높은 경지에 들어선 후 사람은 왜 행복해하기는커녕 근심하겠느냐? 왜 사탄의 손에서 구원되어 큰 붉은 용에게 넘겨졌다고 하겠느냐? “마지막 부분의 사역은 큰 붉은 용의 집에서 완성한다.”라는 말씀을 아직 기억하느냐? “최후의 고난은 하나님을 위해 큰 붉은 용 앞에서 굳세고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기억하느냐? 큰 붉은 용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어찌 그놈의 ‘면전’에서 증거할 수 있겠느냐? 누가 자신을 죽인 후 “나는 악마와 싸워 이겼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더냐? 육을 원수로 간주해 자살하는 것이 실제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왜 하나님이 “나는 사람의 상처는 보지 않고 사람의 온전한 부분을 보며 기쁨을 얻었다.”라고 했겠느냐? 하나님이 아무런 상처도 없는 사람을 그가 말씀할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왜 그가 사람의 입장에서 입이 닳도록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여 사람의 관념을 일축했겠느냐? 그렇다면 왜 그런 고생을 하겠느냐? 무엇 하러 부질없는 일을 하겠느냐? 





이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에는 실제적 의의가 있으며, 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한 후 육신을 ‘단번에 일소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 준다. 왜 “사람 가운데 완벽한 사람은 없고, 금 가운데 순금은 없다”라고 말하느냐?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나님이 말씀한 사람의 본질은 어떤 뜻이냐? 사람의 육안으로 보면 육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혹은 육에는 흠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눈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엄청난 일이 되고, 사람은 아예 해결할 수 없으니 반드시 하늘의 부서에서 직접 처리해야 할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사람의 눈에 나는 단지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별’이고, 하늘에서 가장 작은 자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오늘날 땅으로 내려온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은 ‘나’와 ‘하나님’이라는 이 두 단어에 ‘해석’을 덧붙였다.” 기왕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다양한 입장에서 사람의 관념을 드러냈겠느냐? 설마 이것도 하나님의 지혜란 말이냐?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냐?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예비한 자리가 있지만 사람은 내가 내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기 마음속의 ‘거룩한 자’가 갑자기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신분이 너무 ‘미천한’ 관계로 사람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여 사람에 의해 ‘도태’되었다.”라는 말씀과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을 ‘너무 높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낼 수 없어’ 하나님을 ‘난감하게’ 하였다. 사람이 요구하는 ‘하나님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바로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이것이 바로 ‘자기 꾀에 넘어간다’는 실제 의미가 아니겠느냐? 정말 평생 똑똑하게 굴다가 순간 멍청하게 구는구나! 너희가 설교할 때 사람들에게 ‘관념 속의 하나님’을 없애라고 하는데, 너희는 ‘관념 속의 하나님’을 없앴느냐?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가 높지 않다”라는 말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이는 사람에게 소극적이 되거나 방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성육신 하나님이 정말로 사람이 상상하는 “지극히 높고 큰 ‘나’”이겠느냐?  


[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말씀]——하나님의 뜻을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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