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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시대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 교회 생활의 차이는 무엇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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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시대 교회 생활과 하나님나라시대 교회 생활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지민사랑 2020. 3. 2. 11:33

   성경 참고: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계 10:9)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셋째 하늘로 돌아갈 때,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땅에는 예수가 졌던 십자가, 그의 몸을 감쌌던 세마포, 그가 썼던 가시 면류관, 그가 입었던 자색 옷(이는 모두 유대인이 그를 희롱하며 사용했던 물건임)만 남았다. 즉,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역이 한바탕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잠잠해졌다. 그 후 예수의 제자들은 곳곳의 교회에서 양육과 목양을 하며 그의 사역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게 하였고, 세례받게 하였다. 사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내막과 실제 상황을 전하여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스스로 ‘예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복하게 하였다. 또한, 곳곳에서 예수의 말씀과 그가 정한 율법과 계명을 전했다. 이로부터 은혜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6> 중에서

   『예전에는 각 지역에서 특별 예배를 하거나 대예배를 하면, 한 부분의 실행 길만 강조했다. 그런 실행은 모두 은혜시대에서 행해야 했던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별로 깊은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은혜시대의 이상은 기껏해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일 뿐, 그 외에 더 큰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한 사역밖에 없었으므로 은혜시대에는 사람에게 알려 줄 이상이 더는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예수의 자비와 긍휼을 아는 것 외에 사람에게는 단순하고도 초라한 실행만 조금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에 비하면 너무도 많은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모임을 가져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말할 수 없었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가장 적합한 실행의 길을 그 누구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포용과 인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단순한 내용들만 조금 더했을 뿐, 그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동일한 시대에 더 새로운 사역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요구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거나 십자가를 지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실행 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보다 더 높은 이상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종교인들은 함께 모이면 “자매님, 요즘 어떠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마디, 몇 자의 말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힌 더러운 것을 뱉어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혐오스럽고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교제한다. 거기엔 솔직함만 있을 뿐 거짓도, 체면치레도, 꾸밈도 없고 세속적인 규율도 없다. 하지만 겉면의 열정이 많고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누가 찬송가를 부르면 춤추느라 밥솥의 밥이 다 타 버린 것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함과 존귀함이 없고 너무나 경박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제가 없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제할 때 하나님께 죄스럽다고 말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죄스러워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표면적인 열의나 행동이 아닌,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체험을 나누고 교제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 내적 상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패괴된 성품을 모두 꺼내어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은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나누고 교제하는 것이다. 진실한 교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채 하나님 말씀이나 찬송가를 통해 알게 된 내용만을 되는대로 나누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너희는 도리적, 이론적 인식만을 언급할 뿐, 실제 체험에 대한 인식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런 화제를 피하고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개인의 삶이나 교회 형제자매들이 살아가는 그 범주, 개인의 내적 상태 등은 모두 피하려 드니, 이런 식으로 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겠느냐? 참된 신뢰가 생기겠느냐? 불가능하다! 아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남편에게 속내를 말한 적이 없다면 그들을 영혼의 반려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알겠느냐? 온종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라도 그 말은 그저 말로만 그칠 뿐이다. 그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대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 번도 보여 준 적도 이야기한 적도 없으며,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 적도 없다. 마음에 있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부부겠느냐? 함께 있을 때면 늘 입에 발린 말만 하는 부부가 진짜 부부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형제자매는 서로 마음을 이해하고 돕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개개인이 자신의 진실한 체험을 말해야 한다. 네가 네 진실한 체험은 말하지 않고 원론적인 말, 글귀나 도리, 피상적인 것만을 입에 올린다면 너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정직해질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마지막에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지에 대해 많이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러한 측면에서 사실적이고 알아듣기 쉽게 말해야지,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라. 마음속 솔직한 말을 하면서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해선 안 된다.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체험한, 실정에 맞는 말, 마음에 있는 말을 해야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매우 적절하다. 지난날, 너희는 하나님을 가장 심각하게 대적한 자들이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복되었다. 이것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 이러한 측면의 일을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서 확실히 이해한다면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뻔뻔스러운, 비이성적인 일을 하기 쉽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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