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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본문

전능하신 하나님교회/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김지민사랑 2020. 7. 31. 05:30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3년 5월 25일부터 또 <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 <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등 여러 편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모압의 후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은 바로 가장 어두운 흑암 속에 떨어진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비록 저주를 받은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영광받고자 한다. 애초에 이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역의 결과는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렇게 해야 영광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얻고자 하는 영광이다. 지위가 낮은 이들이 지금 이렇게 큰 구원을 받는 것은 실로 하나님이 높여 준 것이다. 이 사역이 매우 큰 의의를 지닌 것은 심판으로 이들을 얻기 때문이다. 심판하는 것은 일부러 이들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것이다. 만약 말세의 정복 사역도 계속 이스라엘에서 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설령 성과가 있다 해도 아무런 가치도 없고 별로 큰 의의도 없으며, 모든 영광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너희에게 역사하는 것은 가장 어두운 곳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것이자, 가장 뒤떨어진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이 피조물들은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사탄에게 속아 하늘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른다. 너희들이 마음속으로 우상을 경배하고 사탄을 경배하고 있으니 가장 비천하고 뒤떨어진 사람이 아니냐? 이런 사람은 가장 천한 육을 가졌으며 개인의 자유가 조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고난을 받고 있다. 또 너희는 이 사회의 최하층 사람이며 신앙의 자유조차 없다. 너희에게 역사하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모압의 후손인 너희에게 역사하는 것은 일부러 너희를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의의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너희를 크게 높여 준 것이다. 이성이 있고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압의 후손인 저를 오늘날 하나님이 이렇게 크게 높여 주시고 크게 축복해 주시는군요. 저는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행한 것과 말한 것, 저의 신분과 가치로 볼 때,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신분이 훨씬 높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얼마나 충성했고, 베드로 또한 예수님께 얼마나 충성했습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백배나 더 충성했습니다. 우리가 행한 것으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중국인들의 섬김은 하나님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정말로 너무 형편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높여 준 것이다! 너희가 언제 하나님의 역사를 찾은 적이 있느냐? 언제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적이 있느냐? 언제 가정, 부모, 자식을 기꺼이 버리려고 했느냐? 아무도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성령이 너를 인도하지 않았다면 너희 중 몇이나 희생할 수 있었겠느냐? 모두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지금까지 따라온 것이다. 너희의 충성심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순종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행실대로라면 진작에 멸해 버리고 단번에 쓸어버렸어야 한다. 너희가 이렇게 큰 복을 누릴 자격이 어디에 있느냐? 그럴 자격이 전혀 없다! 너희 중 스스로 길을 개척한 자가 있느냐? 스스로 참도를 찾은 자가 있느냐? 다 놀고먹기 좋아하며 안일만 탐하는 천박한 존재들이다! 너희는 자신이 대단하게 보이느냐? 칭찬할 것이 있느냐? 너희가 모압의 후손임을 말하지 않으면, 너희의 본성과 출생지가 최상으로 변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너희가 모압의 후손임을 말하지 않아도 너희가 뼛속까지 모압의 자손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 사실이 바뀌기라도 하겠느냐? …

 

… 하나님이 땅에 왔지만 하나님은 본래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누리기 위해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곳에서 사역하여 자신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고 가장 의미 있다면 그런 곳에 강생한다. 거룩한 곳이든 더러운 곳이든, 어떤 곳에서 역사하든 그는 거룩하다. 세상 만물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저 만물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물은 여전히 그에게 속하고 그의 손에 있다. 그가 더러운 곳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사역을 위해 이렇게 한다. 다시 말해, 더러운 곳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극도의 굴욕을 참으며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를 위한 것이자,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사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알려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함과 정직함은 모두가 업신여기는 비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서 나타난다. 그가 더러운 곳에 강생했다고 해서 그가 비천한 존재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모든 피조물에게 그의 위대함과 인류를 향한 참된 사랑을 보여 줄 뿐이다. 그가 이렇게 할수록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은 흠 없이 깨끗한 사랑임을 더 잘 보여 준다. 더러운 곳에 강생했더라도, 더러움이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더라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생활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가 행한 그 모든 사역은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냐? 인류가 크나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2천 년 전에 그가 죄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한 것은 구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가 또다시 더럽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모든 사역은 너희 이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말구유에서 탄생하고, 오랫동안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난을 받았겠느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떻게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강생하여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으냐? 그가 한 사역 중에 인류를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너희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하나님은 거룩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더러운 곳에 왔다고 해도 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일말의 사심도 없고, 그가 너무나 큰 고통과 굴욕을 참아 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희를 위해, 너희 운명을 위해 그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고 있는지 너희가 모르느냐? 그는 높고 대단한 사람들과 돈 많고 세력 있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고, 비천하고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사람들만 구원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거룩함이 아니냐? 모두 그의 공의로움이 아니냐?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 그는 기꺼이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모든 굴욕을 참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진실하기에 거짓된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모두 이렇게 실제적이지 않으냐? 비록 모든 사람이 그가 죄인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방하고, 그가 더러운 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장 비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조롱해도, 그는 계속해서 이처럼 사심 없이 자신을 바치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다. 그가 참아 낸 고통이 너희보다 크지 않으냐? 그가 행한 사역이 너희가 치른 대가보다 많지 않으냐? 너희는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얻었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커다란 보호를 받았다. 너희에게 무슨 선택이 있겠느냐? 또 무슨 불평할 것이 있느냐? 그가 너희보다 더 큰 고통을 받지 않았느냐? … 관념에 따른다면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면서 어째서 저희가 사는 이 더러운 곳에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더러운 저희를 증오하고 혐오하시며 저희의 대적과 패역을 혐오하시면서 어째서 저희와 함께 생활하십니까?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신 당신은 어디에서든 태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굳이 더러운 땅에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매일 저희에게 형벌을 내리고 심판하며 저희가 모압 후손임을 아시면서 어째서 저희 가운데서 생활하십니까? 어째서 모압 후손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하십니까?” 너희의 이런 인식은 너무도 비이성적이다! 이런 사역만이 사람들에게 그의 위대함과 낮춤과 감춤을 알게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자 했고, 자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고통을 받았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인류를 위한 것이고, 더욱이 사탄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피조물이 그의 권세 아래에 순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 중에서)

 

지금의 정복 사역은 그저 모든 정복 사역의 시작이며, 너희는 정복되는 첫 무리이고 정복될 전 인류의 대표이다. 참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지금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이 아주 좋은 사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패역을 깨닫게 했을 뿐 아니라 너희의 신분도 밝혀 주었다. 그가 말씀하는 목적과 의의는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 이런 말씀을 통해 계시를 얻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며, 그가 한 말씀으로 사람의 영을 깨우는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줄곧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도 않았다. 이들이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크나큰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이다. 참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인식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이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압의 후손이라고 하셨어요. 그것도 모압의 후손이라고 친히 말씀하셨으니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있겠어요? 우리가 모압의 후손인 걸 어쩌겠어요? 지난날 하나님을 그렇게 대적했으니 어쩌겠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러 오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를 심판하시는 걸 못 보셨어요? 하나님을 대적했으니 이렇게 형벌받아도 마땅해요.” 이런 말이 옳으냐?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이 어떠하든 그것은 다 사람이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예수님예수님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너희를 구원하는 지금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마지막 때이다. 그러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말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그저 매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얼마나 크든 너희가 받는 것은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은 전혀 없고,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구원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자비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런 형벌과 심판 앞에서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가 처음부터 줄곧 누려 온 것이 모두 구원이 아니냐?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를 알았고, 더욱이 매질과 징계도 여러 번 겪었지만 또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어느 누구보다 큰 복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생각해 보아라. 만약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죄하고 징벌하러 왔다면 너희의 날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느냐? 죄에 속하는 육적인 너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 단순히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성육신하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큰 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었겠느냐? 너희 같은 무명소졸을 징벌하려 한다면 말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굳이 너희를 정죄한 뒤에 멸망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긍휼과 자비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을 완전히 순종하게 하는 데 더 유리하지 않으냐? 사람을 더욱 온전히 구원할 수 있지 않으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예언서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되고 이방으로 전해질 것이라고 되어 있다. 왜 그렇게 말했겠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하나님이라면 사역을 확장하지 않고 이스라엘에서만 사역할 것이며, 그런 예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언을 한 이상, 하나님은 반드시 이방 족속과 각 나라, 각 지역으로 사역을 확장할 것이다. 그는 말한 이상 반드시 행하며, 이는 그의 계획이다. 그는 본디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자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역하든 유대 전역에서 사역하든, 그가 한 사역은 전 우주의 사역이고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사역이다. 오늘날, 그는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다. 즉, 이방 족속에서 그의 사역을 하지만, 이것 역시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다. 이스라엘은 그가 땅에서 펼치는 사역의 거점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그가 이방에서 펼치는 사역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실현된 때가 아니냐? 이방에서 행하는 사역의 시작은 큰 붉은 용의 국가에서 전개되는 이 사역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사람의 관념에 특히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서 사역한다는 것과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사역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비천하고 무가치하며, 처음에 여호와께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면 모든 지위와 가치를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피조물로서 사탄에게 침해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창조주께 버림받는다면 이는 그의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압의 후손은 저주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낙후한 국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의심할 여지 없이 이들은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부류이다. 이들이 과거의 지위가 가장 낮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하는 사역은 사람의 관념을 가장 잘 깨뜨리는 사역이며, 6천 년 경륜에 가장 이로운 사역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사역하면 사람의 관념을 가장 잘 깨뜨릴 수 있다. 이로써 시대를 열고, 사람의 모든 관념을 깨뜨리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끝내는 것이다. 최초의 사역은 유대에서 행해졌고, 이스라엘의 범주에서 진행되었지만, 이방에서는 시대를 여는 사역이 전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이방 사람들, 나아가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행해진다. 바로 이 점이 사탄을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증거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전 우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되었고’, 만물의 주인이 되었으며, 생기 있는 모든 것들의 경배 대상이 되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자, 전 인류의 하나님으로, 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고 공의롭게 대하고, 사람의 족속과 민족을 따지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인이든 모압의 후대든 상관없이 모두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의 사역이 이번에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해졌다면 중국처럼 더럽고 패괴된 나라의 사람들은 구원받을 기회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이 모압의 후대에게 역사하시는 의미가 너무나 크며, 하나님은 너무나 지혜롭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깊이 패괴된 인류에게도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압의 후대인 중국인은 신분과 지위가 가장 낮고, 수천 년간 봉건적인 예법의 해로운 영향을 받아 온 데다 장기간 무신론적 교육을 받아 온 탓에 하나님이 계신지 몰랐고,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았으며, 전 인류 가운데 가장 뒤처지고 패괴된 자들이자, 제일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미워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직접 성육신하여 이 더러운 땅에 오셨고, 크나큰 모욕과 고통을 견디시면서, 자신을 낮추고 감춘 채 이 모압의 후대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사역하며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사탄에게 치욕을 안겨 주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드러내는, 가장 힘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패괴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 진실됨을 보고 나서 모두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꼈고, 눈멀고 무지했던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가 임했음에도 알아보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변해 불만만 터뜨렸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드리며 뉘우쳤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이런 사랑과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다시는 감히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요구를 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다들 하나님이 어떻게 지배하고 안배하시든, 모두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열심히 진리와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고, 설령 모압의 후손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길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압 후대의 시련이 맺은 결실입니다. 1993년 11월, 모압 후대의 시련이 끝났습니다.

 

모압 후손의 시련
(1993년 5월~1993년 11월)
하나님 선민들은 부각물의 시련을 겪고 나서 자신의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탄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도 직접 느꼈으며, 진리 추구를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위, 미래나 종착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겠노라고 확고한 뜻을 세웠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진리를 얼마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알게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비록 하나님 사역 속의 부각물이지만, 그래도 말세에 현현하여 사역하시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심판하고 정결케 할 대상이자, 하나님이 재난 전에 만드시려는 이기는 자, 즉 첫 열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행세하면서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가 다른 나라의 하나님 선민들보다 높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지위를 향한 욕심과 교만한 성품을 겨냥한 진리를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모압 후대의 시련으로 이끄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그림전

백여 점의 그림과 설명 텍스트로 이루어진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그림전을 통해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기원과 발전 과정에 대해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kr.kingdomsalv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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