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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본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책/그리스도의 말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영나미 2019. 5. 5. 00:30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어서 이 구절의 마지막 말을 보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 말씀에 실제적인 면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이 말씀의 실제적인 면을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가 왜 이런 말씀을 했겠느냐? 너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이제 너희는 이 말씀의 함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말을 이해하는 자가 많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율법시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안식일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려웠고, 진정한 안식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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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하나님이 네게 필요한 모든 물질을 공급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만족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너의 진리 추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느냐?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교제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은 모두 진리의 내용이므로 값나가는 물질 그 무엇으로도 절대 저울질할 수 없고, 그 가치 또한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비물질적 진리는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이 말은 너희가 천천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어떤 물질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겠다. 배가 고플 때, 너는 음식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 음식이 좋을 수도 있고 별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배만 채우면 배고플 때의 괴로움은 사라진다. 그러면 너는 안정을 되찾게 되고, 너의 몸도 함께 편해진다.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여겨질 때 네 마음속의 그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음식물이 해결해 줄 수 있느냐? 또는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느끼는 그런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성품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의 성품 또한 알지 못한다면, 너는 안타깝지 않겠느냐? 마음이 갈급하지 않겠느냐? 이러한 감정 때문에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없지 않겠느냐? 이러한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느냐?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찾아 얘기를 나누며, 어떤 사람들은 한잠 푹 자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 본다. 혹은 본분 이행에 더 노력을 기울이고 더 애를 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너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느냐? 너희는 이러한 방법들에 대해 깊이 느낀 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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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역부족이라 느낄 때, 진리의 실제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깨우쳐 주기를 갈망할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때 네게 필요한 것은 한 끼 밥도, 따뜻한 말 몇 마디도 아니며, 일시적인 육적 안일과 만족은 더더욱 아니다. 네게 필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이며, 무엇이 진리인지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일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면, 너의 마음은 밥 한 끼를 배불리 먹은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느냐? 네 마음이 만족을 느낄 때, 너의 마음은 물론, 온 몸과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얻지 않겠느냐? 내가 이렇게 비유하고 분석해 줬으니, 이제 너희는 내가 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씀을 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으냐? 이 말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모든 것이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사물과 사람을 포함한 그 무엇보다 크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후의 체험 가운데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왜 이 구절을 보라고 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다 진리이고 생명이다. ‘진리’란 사람의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며, 사람이 한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 해도, 진리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네 마음에 안식을 선사해 주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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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진리를 깨닫는 것을 자신의 상태와 연관시킬 수 있느냐? 실생활에서, 너는 먼저 자신이 경험한 사람, 일, 사물이 어떤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진리 속에서만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연관시킬 수 있다. 너에게 임한 일이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 모른 채 곧장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행동에 속하며 성과를 낼 수 없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선 너에게 닥친 일들이 어떤 유형의 일인지, 어떤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봐야 한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네 체험에 상응하는 진리를 찾고, 그 상응하는 진리에서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길을 찾으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어떤 규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어떤 공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공식 같은 것이 아니며, 규칙도 아니다. 진리는 죽은 것이 아니고, 생명이며, 살아 있는 것이다. 또한 피조물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법칙이다. 너는 경험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더 많이 체험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든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 네가 이해하고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현된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진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바로 진리이다. 다만 진리는 발현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진정으로 구현한 것이며, 하나님의 속성을 전부 구체화하고 성문화한 것일 뿐이다. 진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네게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 주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하나님이 말씀한 이런 진리의 이면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본질을 보았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발현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알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실생활 밖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느 정도 인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이론적이고 문자적인 것에 국한될 뿐, 진정한 하나님 자신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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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교제 범위는 모두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에 국한된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고 예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하나님이 일찍이 나타냈던 성품과 속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은 더 광범위하고 더 깊이 있게, 더 다양하게, 다원적으로 하나님의 면면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이 한 말씀과 행한 사역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게다가 더 전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성경의 사례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알게 하면 좀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하나님이 선포한 심판과 형벌의 말씀, 진리들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파고들면서 하나님을 알게 한다면, 너희는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공식처럼 느끼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속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면, 사람들은 지루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언어로 당시 하나님 마음속에 있던 구체적인 생각까지 알려 주는 셈이다. 또한 하나님의 당시 심정, 그러니까 정서나 생각까지 전부 알려 줄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알려 주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 공식도, 전설도 아니고,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며, 사람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들을 참고로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더 광범위하게 알 수 있고, 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나타낸 성품들을 통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과 인류에 대한 애틋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여 주었는지를 알 수 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것들을 전부 느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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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시대에 예수가 했던 사역에서, 너는 하나님의 또 다른 측면의 속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속성은 모두 육신을 통해 나타나며, 또한 인성을 통해 사람이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은 인자에게서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며 인성을 지니고 사는 모습을 보았고 신성(神性)을 발현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발현된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실제적인 하나님을 보았으며, 하나님에 대해 다양한 개념을 갖게 되었다. 창세부터 율법시대가 끝나는 시점까지, 즉 은혜시대 이전에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신성의 일면이었다. 즉, 하나님이 비물질적인 세계에서 행하고 말씀한 것, 사람이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본체에서 발현된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대부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가까이할 수 없는 높은 존재라고 느끼게 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겨 준 인상은 대부분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였다. 심지어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 신묘막측해서 도저히 종잡을 수도, 알 방법도 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묵상하거나 체험한다는 것은 언급할 여지조차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모든 것은 아주 요원해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었다. 그는 마치 하늘 끝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고 아주 요원한 일이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일부 구체적인 사역들을 하고, 구체적인 말씀을 하고, 구체적인 성품을 보여 주었다. 덕분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확실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하나님이 비물질세계에서 보여 준 속성이었다. 즉, 사람이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성 측면의 속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사람에게 구체적인 개념을 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상은 여전히 ‘가까이하기 어렵고,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체’라는 범위에 머물게 되었다. 하나님이 물질세계의 구체적인 물건이나 형상으로 사람에게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사람의 언어로 정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항상 사람의 언어로 하나님에 대해 하나의 기준을 정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을 물질화, 또는 인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생김새는 어떤지, 하나님의 구체적인 기호와 성격은 어떤지 등등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사람의 필요 또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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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방식으로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한 것이다. 그 방식은 인성으로도 하고, 신성으로도 사역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사역하는 기간에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그가 춤도 추고, 혼인 잔치에도 참석하고,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도 하고, 어떤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예수는 신성을 대표하는 사역도 많이 행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역은 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발현된 것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의 신성이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하여 사람들은 그를 보거나 만질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고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인자의 일거수일투족, 인자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거나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다.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사람이 본 것은 형태를 갖추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속성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놓고 볼 때, 인자의 겉모습은 확실히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속성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신성이든, 우리는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시각으로 말씀하며, 인자의 신분과 지위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이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시각은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본체와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시각으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타락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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