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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주님이 돌아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일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본문
어제 멕시코의 아난 자매가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돌아왔다고 증거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성경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주님이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모를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 주님이 돌아온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죠?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사실 이 구절에서 말한 것은 주님이 돌아오는 구체적인 시간과 날짜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역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주님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처럼 주님이 오시면 사람들로 알게 하며 말씀을 선포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려요. 그 소리를 듣고 찾고 구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당시 예수도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기 전에는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러나 세례를 받자 영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하면서’ 사역을 시작하여 그의 신분과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을 나타냈다. 그전까지는 마리아 외에 누구도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요한조차 몰랐다. 예수는 29세에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가 끝나자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듯 그를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례를 받기 전인 29세 전까지는 그 역시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식사해야 할 때 식사하고, 잠을 자고, 옷을 입는 등 일반인과 똑같은 행동을 했으며,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때의 관점이다. ...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의 육신은 여전히 원래의 육신 그대로였다. 다만 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그의 신분을 나타냈을 뿐이다. 또한, 그는 권병과 능력으로 가득해졌다. 이것이 바로 예전과 다른 점이었다. 그의 신분, 즉 지위에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이다. 처음에는 몰랐던 사람들도 성령이 이렇게 증거하자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만약 성령이 증거하기 전이었다면 예수가 엄청난 사역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 자신의 증거가 없기에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육안은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증거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육신 하나님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그가 예전과 다름없이 사역했다면,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주로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이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하나님의 증거는 틀리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 한 사역과 이후에 한 사역이 같다면 성육신한 그의 직분은 물론,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눈에 띄는 차이가 없기에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증거 이후,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지켜야 하므로 반드시 그에게서 지혜와 권병을 나타내야 했고, 이전과 달라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세례의 효과가 아니다. 세례는 그저 의식에 불과하며, 세례받는 방식으로 그가 직분을 이행할 시간이 되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끝까지 책임진다.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예수도 곳곳에서 설교를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큰 사역은 하지 않았다. 이는 직분을 이행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어 육신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는 전혀 사역을 하지 않았다.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사역을 하지 않은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령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해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에게 사역할 능력과 권병을 주지 않았기 때문임). 설령 예수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는 앞으로의 사역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므로 그 누구도, 심지어 예수 자신조차도 어길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역을 스스로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는 일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초자연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영의 안배에 어긋나게 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매우 정상적으로 사역한다. 그의 사역에 권병과 능력이 생긴 것도 세례를 받은 후부터다. 다시 말해, 성육신했다 해도 초자연적인 행동이나 일반인의 성장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가 진작부터 스스로의 신분을 알고, 세례받기 전에 곳곳에서 큰 사역을 하면서 모든 일반인과 달리 비범함을 드러냈다면, 요한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못했을뿐더러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하는 일에 착오가 있다고 증명되었을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근원이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전부 세례를 받은 이후, 즉 3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에는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그가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러한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일반인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는 29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한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초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열두 살에 예배당에 예배하러 갔을 때 마리아가 그를 찾았다. 그때 그는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된 자인데 조금도 특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의 특이함이 초자연적인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다른 어린아이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했을 뿐이다. 겉모습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본질은 특이하고 남달랐다. 하지만 성령이 그에게 역사한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낀 시점은 세례를 받은 이후였다. 33세가 되던 해에 그는 비로소 성령이 그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할 것임을 알았다. 32세 때는 실정을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때가 되자 알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령도 그에게 점차적으로 역사했으며, 과정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성육신한 인자라는 것을 알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째서 세례받기 전에는 사역하지 않았겠느냐?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가 이행할 직분을 말해 준 후에야 근심하며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겠느냐? 어째서 요한이 그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세례를 준 후에야 비로소 오랫동안 몰랐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이 모든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사역임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그가 깨닫고 도달하기까지 전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기에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과는 달랐다.』
『구약시대는 여호와가 길을 이끈 시대였다. 여호와의 사역은 구약의 모든 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에서 행한 모든 사역을 대표한다. 모세는 그저 땅에서 그 사역을 지켰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 여호와는 음성을 발해 모세를 불렀으며,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모세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가 사람들을 광야로 인도해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다. 그것은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일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 율법도 여호와가 정하고 친히 반포한 것으로, 단지 모세에게 전하게 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했다. 게다가 구약의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했다. 그럼 어째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이는 같은 맥락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변하지 않으며, 새로운 길을 연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해 주었다. 그는 그저 쓰임 받는 사람에 불과했다. 예수가 왔을 때, 요한은 이미 길을 닦는 사역을 하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었다(성령이 이렇게 하기 시작했음). 그래서 예수가 와서 바로 그의 사역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사야도 그렇게 많은 예언을 했는데, 어째서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그 당시 예수가 했던 사역을 감히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전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이 분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역과 예언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여호와의 묵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리 많은 사역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도, 예언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높은 도를 전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는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요한이나 이사야, 다윗을 믿은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 또는 다윗 신, 요한 신이라고 부른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로 불렸다. 이는 하나님의 증거와 그가 담당한 사역, 그리고 그가 이행한 직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다윗, 여호수아, 다니엘, 이사야, 나아가 요한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나오는 큰 인물들이 행한 사역에서 너는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누가 선지자, 사도에 속하는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지는 그들이 행한 사역의 본질과 유형에 따라 구분되고 확정된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그렇게 많은 말씀과 많은 사역을 하고 더욱이 수많은 이적을 보여 줬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면,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과 많은 말을 했고, 모세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하느냐? 아담은 하나님이 친히 만들었는데, 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고 그저 피조물이라고 불리겠느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사역과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라고 한다면,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했으니 그 역시 하나님 자신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은 왜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셨으면서 요한은 증거하지 않았겠습니까?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하지 않았습니까? 요한이 한 사역이 큽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큽니까? 사람이 보기에 요한이 한 사역이 크고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작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으셨을까요?”라고 반문하여라.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 자신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고 직접 이끈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에게 그런 영과 어떠함이 없었으므로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한 일과 예수가 한 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행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 선지자, 사도,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구분하는 것은 사역의 성질이다. 이렇게 하면 너는 의문이 없어질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는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역대로 수많은 큰 인물들이 성경을 해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그들을 전부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해석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그저 성경 해석가에 불과했다. 그들이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떻게 일곱 인을 뗄 수 있겠느냐?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일곱 인을 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 사역은 별로 필요가 없으므로 사역을 하면서 곁들여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사역을 똑똑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굳이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느냐? 6천년 사역에 굳이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해야겠느냐? 그는 새 사역을 하기 위해 왔다. 다만 과거의 사역에 대해 조금 풀어 주면서 사람이 6천년 사역의 실정을 알게 하면 충분하다. 구태여 많은 성경 구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하는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확장열람: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한다는 것만 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강림하겠느냐? 너희처럼 이제 막 속량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빠졌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속량만 될 뿐, 성결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속량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 대단한 전도자, 설교자, 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영적인 위인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너희가 말하는 것은 전부 낡아 빠진 것들이 아니겠느냐? 보좌에 오르거나 왕의 분량을 예비하는 것, 자신을 버리거나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 인내하거나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 겸손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전부 케케묵은 말들의 반복이 아니더냐? 이는 겉만 바꾸는 것일 뿐 속은 그대로이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떡을 떼거나 안수기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 외에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겠느냐? 무슨 발전성이 있겠느냐? 이대로 이끌다 보면 너는 죽어라 규례를 지키거나, 여태까지 해 온 대로만 계속 움직일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사역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이 전부 고대의 ‘노인’이 물려준 유전이자 유훈임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하는 말, 하는 행동은 전부 노인들의 유언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더냐? 노인들이 임종 때 남긴 당부가 아니더냐? 너희가 하는 일이 역대의 사도, 선지자, 심지어 만유를 뛰어넘는 일이라 생각하느냐? 나는 이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너희가 위트니스 리를 숭상하며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기를 추구하는’ 것을 제지시키고, 너희들의 기를 죽여 놓았으며, 너희가 이 단계의 사역에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너희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구제 불능이 될 것이다. 너희 가운데는 낡아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행히 현재의 사역이 너희를 끌어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가 어디로 갔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어째서 너는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단 말이냐? 어째서 항상 낡아 빠진 것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냐? 그러므로 성령의 현재 역사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오실 때 아무도 그가 성경에 오시리라 예언한 메시야임을 알지 못했지만 주님이 사역하기 시작하고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하자 우리는 예수님의 신분을 알게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구체적으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오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주님이 돌아와서 사역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알게 되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주님은 이미 돌아셨어요.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를 하셔요. 진리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돌아왔음을 알아차리고 주님을 맞이했어요. 만약 주님의 사역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재난 전에 주님을 맞이하고 싶다면 말씀 낭송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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