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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본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그림전/매일의 하나님 말씀

말씀 묵상<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tistoryno1 2021. 7. 21. 05:30

 

[말씀 묵상]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영 안의 일에 세심해야 하고, 내 말을 중시해야 하며, 진정으로 나의 영과 사람, 그리고 나의 말과 사람을 분리할 수 없는 온전한 하나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나를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만유 위에 서서 온 우주의 모습을 살핀 적이 있다. 또한 모든 사람 가운데서 다니며 인간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다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정으로 나를 알지 못했고, 내가 다닐 때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참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나는 창세 이래 사람이 본 적이 없는 일을 할 것이고, 역대로 사람이 들은 적이 없는 말을 할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육신을 입은 나를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경영 절차이지만, 사람은 오히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내가 분명하게 말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정신이 흐린 탓에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설마 이것이 사람의 비천한 면이 아니란 말이냐?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보완해 주려는 부분이 아니냐? 오랜 세월, 나는 사람에게 어떤 일도 한 적이 없다. 오랜 세월, 성육신한 나를 직접 접한 자일지라도, 내가 신성으로 직접 발한 음성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대로 나에 대한 사람의 사랑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너희에게 측량하기 어려운 수많은 기묘한 사역을 행했고 적지 않은 말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내 앞에서 직접 나를 대적한다. 너에게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어 주겠다.

  날마다 막연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의 뜻과 생명의 느낌을 찾고 있지만, 내 말이 임하면 태도가 변한다. 나의 말과 영을 온전한 하나로 여기면서도 사람을 오히려 ‘걷어차 버리고’, 그런 말은 내 영이 지배하여 한 것이지 나란 사람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너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나의 말은 어느 정도 믿지만, 내가 입은 육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정도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연구하며 “왜 그분은 그렇게 일하시는 걸까? 정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그럴 리 없어! 내가 보기에 그분은 나와 별 차이가 없는 데다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너희 중에 앞에서 말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 점유되지 않은 자가 누구냐? 너는 그것을 자신의 사유 재산인 것처럼 차지하고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주관적으로 노력하려 하지 않고, 내가 친히 나서서 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구하지 않고도 쉽게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것은 내가 너희를 훈계하려고 하는 허황된 말이 아니다. 네가 또 다른 측면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예를 하나 들 수 있으니 말이다.

 

[말씀 묵상]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얘기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가 하나님을 세 번 부인한 일, 사탄을 위해 일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한 일,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일 등을 떠올린다. 지금 나는 베드로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었고 그의 마지막 결말이 어땠는지에 중점을 두어 너희에게 얘기하겠다. 베드로는 좋은 자질을 갖췄지만, 바울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의 부모는 나를 핍박했고, 사탄에게 점령된 악마에 속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베드로에게 전도했다고는 할 수 없다. 베드로는 총명하고 타고난 자질이 좋아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부모의 ‘원수’가 되었다. 이는 베드로가 끊임없이 나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그로 인해 부모와 등지게 되었다. 베드로는 무엇보다 먼저 천지 만물이 모두 전능자의 수중에 있고, 또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은 사탄의 ‘가공’을 거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한 것이자 직접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부모의 부정적인 면으로 인해 나의 자비와 긍휼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를 찾으려는 마음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시했고, 더욱이 내 뜻을 찾는 것을 중시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했기에 영은 언제나 민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 뜻에 부합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실패의 사슬에 매이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평소에 지난날 실패했던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 자신을 다그치는 것을 중시했다. 그는 또한 역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시했다. 그런 까닭에 부정적인 면을 통해, 더 중요하게는 긍정적인 면을 통해 더 빨리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내 앞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손에 맡기고 의식주마저도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나를 만족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내 풍요로움을 누렸음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그 시련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고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그가 나를 사랑할지라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를 사탄의 손에 내버릴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이러한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일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제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제 육체는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저를 죽게 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제가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으신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 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 받아 사람들이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볼 수 있을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고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내 앞에서 보인 충성심과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바가 아니냐? 왜 내가 여기서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며 베드로의 행적을 얘기하는지 너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너희는 마땅히 이것을 너희의 행동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몇 안 되지만, 나는 이로 인해 사람에게 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내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 왔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나의 관용을 빌미로 자신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희는 마땅히 베드로를 통해 어느 정도 나를 알고 추구해야 하며, 베드로의 모든 행적을 통해 지난날을 뛰어넘는 계시를 얻어 사람들이 도달한 적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온 우주의 궁창에서, 그리고 천지 만물 가운데에서 땅의 만물과 하늘의 만물이 모두 나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설마 너희는 방관자가 되어 사탄 세력의 부추김을 받기 원한단 말이냐? 사탄은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시시각각 집어삼키고 언제나 흉포하게 날뛰며 마지막 발악을 한다. 너희는 이때 사탄의 간계에 넘어가기를 원하는 것이냐? 마지막 사역이 완성될 때, 자신의 인생을 망치길 원하는 것이냐? 설마 너희는 아직도 내가 다시 관용을 베풀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나를 알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실행의 중요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말로 너희에게 직접 계시했으니, 나는 너희가 나의 인도에 순종하여,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뭔가를 소망하거나 계획하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 묵상]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


출처:전능하신하나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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