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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십니다.
[큐티/ 설교] 조심하세요! 바리새인들의 길을 걸어가지 마세요 본문
하나님께서 이전에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하신 역사를 회상해보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면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였고 직접 조물주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너무나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예수님이 뜻밖에 우리 가운데 은밀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마치 당시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역사하신 것이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비록 그분의 사역이 완전히 저의 상상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와 위력을 지닌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력을 회상하면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에 직면하여 저는 진심으로 순복하고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대조하고 가늠하였으며 자기의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미 적그리스도로 되어 하나님께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념을 내려놓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실질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실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저는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초의 저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주님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주님의 도래를 저버리고 주님의 도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는 공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메시아를 아예 본 적도 없고 그저 구약 성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소식만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여태껏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역사하시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접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하신 3년 반 동안에 많은 사역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조금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0)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단지 신약 성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조금 알게 된 것이지 전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모두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며, 이 속에는 또 사람의 상상이 너무 많아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시에 성전 안의 사람들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규정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저버릴 수 있었는데, 설마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념과 상상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바리새인과 같은 선택에 직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형제자매님, 아래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더욱 분명히 보고 일찌감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영원한 징벌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표현과 오늘날 각 종파에서 말세의 도성육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을 대조해봅시다. 형제자매 모두가 자신의 귀숙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를 신중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1. 오늘의 신도와 바리새인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의 글귀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관념 속에서 오실 그분은 마땅히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며, 다윗처럼 싸움에 능하여 그들을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사 7:14,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상상한 것과 같지 않았고, 그들이 본 것은 성경의 예언(문자 표면상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본 예수님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요 7:52 참조) 성경 예언에는 오실 그분이 임마누엘로 불린다고 했지만 오신 분은 예수로 불렸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와서 정권을 담당하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정권을 담당하시기는커녕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절대 오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에 그들은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상상과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는 안 되고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유대인의 의복을 입고 유대인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날아오셔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은 마치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져 지워 버릴 수 없는 듯하고, 게다가 사람은 또 성경의 근거를(이런 근거는 다 글자 표면상의 뜻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 11)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니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이런 관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런 상상과 관념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상상과 참으로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차 육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굳어진 상상과 관념으로 대조해보는데, 맞추지 못하면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합니다. 거짓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2.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전하는 도가 아무리 높아도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5-49) 이 두 곳의 경문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자신이 율법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들을 미혹하여 “당신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생명도 작으니까 저의 말을 들으면 틀릴 리가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세요.” “그들이 아무리 잘 설교해도 듣지 마세요. 참 도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의 실질은 바리새인들의 표현과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오만 자대(自大)와 진리에 불복하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3.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각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모독하고 정죄합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마 22:15-16)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 그들의 오만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천고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재차 도성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많은 언어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찾고 구하고 고찰하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어떤 말씀이 성경의 글귀와 부합되지 않으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본받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여 정황을 알아보게 한 후 사실을 왜곡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훼방하며, 심지어 거짓 증거를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해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농락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대적하면서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관청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2) 오늘 각 종파의 인솔자들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를, “전능자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정부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청에 보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5. 오늘날의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의 또 한가지 최대 공통점은 바로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도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발표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이런 말씀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의 도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여 모든 은밀한 속사정을 살피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분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이렇다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소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걸을 수 있게 하시고 문둥병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을 미혹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두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새 시대를 개척하셨고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셨으며 모든 비밀을 풀어주셨고 참으로 사람에게 진리ㆍ길ㆍ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아주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번에 도성육신 되어 정복과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무릇 진심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극히 큰 구원을 받아 인성의 살아냄이 갈수록 정상적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알고 패괴 성정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사역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룬 효과입니다. 하지만 각종각파의 인솔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정도 버리고 믿는데 모두 미쳤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오늘의 정죄와 대적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것과 또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들의 끝장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위의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모두 바리새인들의 길을 다시 걷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왜 말세에 재림하신 구주 예수를 저버리고 이전 사람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왜 메시아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최종에는 또 메시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말해보아라, 그들이 이렇게 우매하고 완고하며 이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바로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없고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오만함과 완고함, 진리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대적하고 정죄했는데, 그럼 우리는 오늘 또 어떻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의 재림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처럼 혼미한데, 예수로부터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사역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린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송이송이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를 줄곧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형제자매님, 예수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주님께로 향한 사람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범치 않은 역사는 더욱더 포도원 안의 ‘악한 종’들을 드러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롬 11:33-34 참조) 하지만 사람은 오만 자시하여 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이 정말 이러할까요? 마치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 27:25)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판단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눅 23:44-48) 그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고 규정하며 말세에 도성육신 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든 지간에 우리는 모두 이런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인 이상,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사람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도성육신 되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적ㆍ훼방ㆍ거절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소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신 복음은 여전히 우주 땅끝까지 널리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각성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던 주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하나의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버리고 겸손하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계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님, 우리 함께 현실에 직면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매우 정확한 진리입니다! 미혹될까 두려워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악한 종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유언비어를 곧이듣지 마십시오. 형제자매님, 바리새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대조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리새인들의 몸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며 따라야 하겠습니까?
본문 출처:큐티
[오늘의 규티]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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